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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호_History] 나중에는 없을지도 모르는 그 단어, "퀴어" (17.05.15)서울퀴어문화축제 SQCF 2017. 5. 31. 11:00
나중에는 없을지도 모르는 그 단어, "퀴어"
16세기 영어에서 최초로 관찰되는 "퀴어(queer)"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이상한, 독특한’이라는 의미로 쓰이다가, 19세기를 전후하여 여성성을 가진 남성 혹은 동성과 관계를 맺는 남성을 경멸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20세기에 이르면서 그 사용이 좀더 빈번해지는데, 요즘도 널리 읽히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시리즈 중 <두 번째 얼룩>(1904)에서도 "퀴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윽고 남성 동성애자들을 중심으로 한 성소수자들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이들의 호칭이
인버트invert(20세기 초반)-호모homophile(20세기 중반)-게이gay(1960-70년대)
로 변화하는 와중에도, "퀴어"는 꾸준히 남성간의 항문성교나 구강성교를 비롯 시스-헤테로 이외의 존재를 경멸적으로 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어 왔었습니다.
그리고 의미의 전복이 일어납니다.
때는 1990년 3월. 미국의 성소수자 단체인 ‘퀴어 네이션’은 1990년 6월에 열릴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위해 준비한 전단지의 제목을 <퀴어들은 읽으라>로 붙이면서 "퀴어"라는 단어의 경멸적 의미를 전복할 것을 주장합니다. 사실 이러한 움직임은 1980년대 후반부터 존재해 왔었는데요, 잠깐 당시 배포된 전단지의 문구 일부를 소개합니다.
“‘그 단어’를 꼭 써야만 할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각기 생각들이 다를 겁니다. 이상하고 독특하며 다소 기묘한 느낌이죠. 게다가 일부의 사람들은 ‘퀴어’라는단어를 통해 사춘기 시절의 괴롭힘과 같은 끔찍한 기억들을 호출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게이’도 좋지요. 이미 자리잡은 단어이고요. 하지만 우리 수많은 레즈비언들과 게이들이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 느끼는 감정은 분노와 역겨움이지, ‘게이’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를 퀴어라고 불러 버립시다! ‘퀴어’라는 단어를사용하는 것은, 나머지 세상이 우리를 어떤 식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일깨워주니까요.”
멸칭을 스스로 가져와 붙이고는 “이 비겁하고 더러운 세상아, 너희가 우리를 이렇게까지 모욕하고 있는 꼴을 봐라!” 하고 외친 셈인데요. 굉장히 터프해서 오늘날의 어감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죠? 2017년 현재 이 단어 ‘퀴어’는 헤테로섹슈얼이 아니거나 시스젠더가 아닌 모든 사람을 중립적 내지 긍정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퀴어문화축제 또한 그러한 의미로 행사의 이름을 정한 것이고요. 한편으로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단어가 이렇게도 변화무쌍하게 교체되는 것을 보면, 2030년쯤에는 우리가 스스로를 무엇으로 부르고있을지도 전혀 예상할 수 없겠군요! 퀴어문화축제도 변화의 물결에 맞춰 계속 변신해야겠습니다.
글 | 진영
이미지 | 퀴어문화축제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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